'부동산 배우면서 돈 버세요. 초보, 주부 누구나 가능. 고소득 및 투잡 원하시는 분'회사 근처 전봇대에 붙어있던 부동산 직원모집 전단지 내용 중 일부다. 누군가가 방금 붙인 것인지 빛이 바랜 전단지들 사이에서 유독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조금 더 자세히 살펴봤다. 직무 관련 경험 등 채용시장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취업 스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배우면서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 전부였다.근무조건은 몹시 파격적이었다. 오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에 4시간만 일하지만 급여는 150만원에 플러스 알파.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에 20일 출근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 4시간 일하고 최소 7만5천원을 벌어가는 셈이다.이 같은 채용이 많은지 궁금해 아르바이트 채용 플랫폼에 '부동산'을 검색해봤다. 무려 945건이 나왔다. 검색옵션을 이용해 지역을 수원시로 좁혀보니 총 32건으로 추려졌다.채용 게시물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배우면서 일하고 근무시간은 짧았다. 월급은 150만~700만원으로 편차가 컸고, 대부분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표기하고 있었다.월급을 많이 준다는 업체 몇 곳에 전화를 해봤다. 이들은 기자에게 이름과 나이, 사는 곳을 물어본 뒤 자신들은 주로 '토지'를 거래하고 있으며 직원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1천만원 넘게 벌 수도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얼굴을 보고 말하자고 회사 방문을 유도했다. 그렇게 부동산 몇 곳과 약속을 잡았다.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간판이 없었다. 건물의 상층부에 영업장이 있었는데, 통화한 A팀장의 설명이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정도였다.어렵게 방문한 부동산 내부는 흔히 접했던 1층 부동산과 느낌이 달랐다. 언뜻 보이는 이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안내가 주 업무로 보이는 직원에게 이름을 말하자 그는 "면접 보러 오셨다"고 누군가에게 전달했고, 통화한 적 없는 임원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방에 들어가니 수원시가 아닌 검단신도시, 세종시 등 특정 지역 지도가 걸려있었다. 지도 옆에는 교통 호재 등 뉴스 보도 캡처본이 붙어있었다. 잠시 후 A팀장이 들어오자 타 지역 지도가 가득한 방에서 예기치 못한 면접이 시작됐다. 직책이 본부장이라 밝힌 B씨는 이름과 나이, 거주지, 졸업 대학, 공인중개사 자격증 여부를 물었다. 자격증이 꼭 필요하냐고 묻자 "자격증 없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돈만 있으면 자격증 있는 사람을 사면 된다"고도 했다.이들은 땅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LH 사태로 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있는 사람들은 땅에다 투자한다"며 "상가나 아파트는 노후되지만 땅은 그렇지 않다. 땅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업무는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미리 매입한 토지를 지인 등 고객에게 분양홍보한 뒤 회사로 데려오면 된다. 이후 계약 등 자세한 설명은 팀장 또는 임원이 맡는다. A팀장은 "내가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다고 지인들한테 소개를 하면 된다"며 "아침마다 회사에서 토지에 대해 교육을 해준다. 땅은 서류상 문제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땅을 사고 잔금을 치르면 돈을 지급한다. 하루에 1천만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다"고 강조했다.두 번째로 방문한 곳도 비슷했다. 안내 직원이 있었고, 모두 복장이 단정했다. 이름을 말하니 직원의 안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지도가 가득한 곳에서 또다시 예기치 못한 면접이 진행됐다.이곳에서 만난 B팀장은 "회사에서 교육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사 소유의 쪼갠 토지를 분양하면 되며, 한 달에 기본급으로만 700만원 이상 가져가는 직원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원은 회사 땅을 고객보다 저렴하게 살 기회가 제공된다"며 "회사 땅은 맹지가 아니며 본인들은 '기획부동산'이 아닌 법인부동산"이라고 설명했다.방문한 부동산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주변 지인에게 '알짜배기'인 회사 땅을 소개, 분양하는 게 주 업무다. 자격증이 없어도 회사에서 아침마다 분양하는 토지에 대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처럼 땅을 소개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영업으로, 땅을 판만큼 돈을 벌어가는 구조다. 본인들이 땅을 살 때는 고객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기획부동산의 수법으로 알려진 것과 상당 흡사하다.기획부동산은 개발 및 교통호재를 미끼로 개발 가능성이 낮은 땅의 지분을 여러개로 쪼갠 뒤 비싸게 팔아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법인을 변경하거나 폐업하는 방식으로 운용해 피해자를 양산하며, 이들이 판매한 토지는 자산가치가 낮고 공유자가 많아 매각이 쉽지 않다. 경기도에 따르면 개발이 어려운 토지나 임야를 싸게 산 뒤 개발 및 교통호재가 있는 것처럼 속여 비싸게 되파는 기획부동산에 의한 경기도민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기획부동산 불법행위(피해)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만 52건에 달한다.기자가 면접에서 들은 업무설명과 비슷한 사례도 있다. 평택시민인 B씨는 자신이 일하던 기획부동산 법인으로부터 영업실적을 강요받아 회사에게 들은 호재를 바탕으로 토지를 취득한 후 지인들에게 좋은 땅이라고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회사로 얻은 정보는 모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고, 설상가상으로 일하던 기획부동산이 폐업하면서 재산과 지인들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기획부동산에서 일했다가 자격증을 딴 후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중개사는 "진짜 좋은 땅은 일반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며 "좋은 땅이면 본인들이 가지고 있지 주변에 왜 팔겠느냐"고 말했다.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기획부동산이 사원을 모집하는 특징은 '한 건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다', '본인이 투자하는 게 우선이다', '친인척 등 주변 인프라를 이용하면 된다'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권유하며,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기획부동산으로 보면 된다. 취업준비생 등 구직자들은 이런 말을 유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윤혜경기자 hyegyung@biz-m.kr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한 전봇대에 붙어있는 부동산 직원모집 전단. /윤혜경기자hyegyung@biz-m.kr아르바이트 플랫폼에 올라온 부동산 관련 채용 공고. /채용 사이트 캡처농어촌공사가 매각해 논란이 되고 있는 맹지. 2020.11.03. /김금보기자 artomate@biz-m.kr
2021-04-16 윤혜경
경기도 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 주변을 중심으로 이른바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들은 개발이 어려운 땅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매입한 뒤 각종 호재를 미끼로 투자자들에게 5~10배 비싼 값으로 토지를 '지분 판매'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20일 A사와 지역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대치동에 있는 A사는 지난해 8월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 9XX(지목 답) 일대 3천456㎡를 6억4천260만 원에 매입했다. 대략 3.3㎡당 62만 원에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A사 관계자는 이 땅을 "고양시에서 추진 중인 JDS 지구 바로 옆에 주상복합용지로 계획돼 있다"고 소개했다.JDS 지구는 고양 장항동, 백석동, 대화동, 법곳동, 구산동, 덕이동 일원 2만8천166㎢를 직주근접의 자족도시 기능과 향후 남북교류 활성화에 따른 개발 가능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사업이다.이에 따라 고양시는 현재 JDS 지구 관리방안과 '2035고양도시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각종 아파트 등 주거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사업(도시개발사업, 지구단위계획 등)을 차단하고자 원점부터 다시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이처럼 아직 구체적인 개발 계획조차 수립되지 않았지만, A사는 GTX 킨텍스역과 지하철 3호선 가좌역, 그리고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 등이 표시된 도면까지 활용해 마치 사업이 확정된 것처럼 허위광고를 했다.특히 이들은 3.3㎡당 298만 원인 해당 농지를 불법으로 취득할 수 있도록 '농지취득 자격증명 신청서'까지 대신 접수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 애꿎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그는 "JDS 지구 주변에 있는 땅을 일반인들이 투자하려면 3~4천㎡씩 덩어리로 매입해야 해 어려움이 있다"며 "저희는 그런 분들을 위해 GTX-A 노선과 지하철 3호선 가좌역 더불역세권에 있는 땅을 매입했고, 1인당 33㎡ 이상부터 지분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GTX라는 교통망이 만들어지면서 일산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그 중심에 지자체에서 개발하는 JDS 지구가 있다"면서 "CJ가 매입해 짓는 아레나 공연장과 그 옆에 들어서는 호텔, 테마파크까지 조성된다"고 설명했다.특히 "JDS 구역 내 가좌지구는 토지보상이, 대화 법곳지구 내 KBS 방송영상산업단지가 공사에 들어갔다"며 "대화2지구도 개발에 들어갔고, 덕이지구의 경우 지역주택조합아파트로 개발 중"이라며 투자만 하면 큰 시세차익을 낼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하며 투자를 권유했다.우선 가계약금을 300~400만 원 정도 넣어야 현장답사가 가능하다는 A사 관계자는 지분거래와 농지 취득 부분에 대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도 했다.그는 "상업지역으로 들어갈 자리를 선점한 땅인데 지목이 답이라 법인 매매를 못 해 대표님 지인 두 분으로 명의가 돼 있다"며 "필지를 지분거래 하는 건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개발 시 동의가 필요하지만, 매매는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또 매매가 힘들면 저희에게 되팔면 된다"고 전했다.농지취득과 등기까지 7~10일 정도 소요되며, 대리 경작까지 책임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또 그는 "JDS 지구 개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투자를 추천해드리지도 않는다"며 "며칠 전에도 투자자 한 분이 33㎡를 매수해 등기 신청이 들어갔다. 조금 웃돈을 주더라도 바로 계약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12월 해당 필지 중 33㎡를 투자자 B씨가 2천500만 원에 지분거래 한 것으로 파악됐다.현지 부동산 업계에선 A사에 대해 개발제한구역 등 개발 가능성이 낮은 농지 등을 싸게 매입한 뒤 여러 지분으로 나눠(지분 쪼개기) 투자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이익을 가로채는 기획부동산으로 보인다고 했다.법곳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법곳동 9XX 관련) 3.3㎡당 50만 원을 준다고 해도 지분거래 한 필지는 절대 매매가 되지 않는다"며 "내 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데 누가 사겠느냐. 말도 안 되는 JDS 지구 개발 계획 갖고 땅 팔아먹는 기획부동산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고양시 관계자는 "법곳(대화)지구 등에 대해선 지난해 11월 최종 반려 처분했다"며 "현재 JDS 지구 내 계획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이상훈기자 sh2018@biz-m.kr경기도 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 중심으로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소연기자parksy@biz-m.kr실제 기획부동산에서 거래되고 있는 농지 모습. /박소연기자 parksy@biz-m.kr
2020-01-20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