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사생결단의 결의까지 보인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정치권이 아니다. 표만 된다면 물불을 안가리는 습성 때문인지 정치권 입김도 상당하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10년간 무려 120조원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주체는 SK하이닉스다. 예정대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면 4, 5개의 반도체공장이 세워지고 관련된 반도체 부품 소재 장비 등의 업체가 줄줄이 따라 들어선다. 그 수만 족히 50개가 넘는다. 수 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물론, 지자체도 막대한 세수가 예상된다. 모두 유치에 뛰어드는 이유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당초 입지는 용인시가 유력했다.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기흥-화성-평택단지가 있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풍부한 반도체 관련 인프라까지 갖춰져 있어 공급과 인재확보에 유리해 누가 봐도 최적의 입지로 여겨졌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았다. 그러나 갑자기 '지역균형발전'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유치에 가세한 지자체와 정치권이 '수도권 집중' 운운하며 반대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부와 청와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난처해진 건 SK하이닉스다. 지자체의 치열한 유치 경쟁과 정치인들의 간섭, 여기에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그동안 숱한 고난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비로소 번듯한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섰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과 마주친 셈이다. 반도체는 적기적소의 투자가 필수다. 경쟁업체 삼성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뒤에서는 중국이 따라오고 있다. 눈치를 보느라 입지선정이 늦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이다.
삼성이 평택 반도체 단지를 구축한 후 화성 기흥단지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이 덕분에 한국 반도체의 국제적 위상이 얼마나 커졌는지 이미 입증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반도체 국가가 됐다. SK하이닉스 입지선정이 예상대로 된다면 한국 반도체는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포퓰리즘식 나눠 먹기, 지역균형 발전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정부는 판만 깔아주고 입지선정은 SK하이닉스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