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talk)!세상] 겸재 정선의 그림이 시작된 곳, 양천

  • 입력 2026-08-26 17:48:47
350년전 인왕산 기슭서 태어나
어머니 3년상 후 양천현령 부임
양천팔경첩 등 5년간 명작 남겨
술보다 붓 사랑한 그… 그립다

겸재 정선作 ‘양화진’(1742년, 양천팔경첩). /일중문화재단 제공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겸재 정선은 알면 알수록 보고 싶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곳을 걷고 싶다. 그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그림 속 풍경을 찾는다. 겸재 정선은 350년 전 백악과 인왕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한성부 북부 순화방 유란동이 집이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경복고 교정 안이다. 외가는 인왕산 기슭 청운초 위 백세청풍 바위가 있는 청운동이다. 그곳은 장동 김씨 시작을 알린 공간이다. 삼연 김창흡 문하에서 사천 이병연을 만나 50년 지기가 되었다.

겸재 정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을 위해 그렸다. 장동 김씨 도움으로 금강산을 유람하며 그리고 또 그렸다. 늦은 나이 ‘도화서 화원’을 거쳐 첫 벼슬 ‘관상감 천문학 겸교수’도 한다. 이후 하양현감과 청하현감을 할 때 낙동강에서 동해안까지 그렸다. 하지만 어머니 3년 상 후 양천현령으로 온다. 양천·김포·통진·강화까지 가는 유일한 뱃길이 양화나루터였다. 양화진에서 양천 궁산 기슭 현아 터까지 배 타고 온다.

양천 궁산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따라 목멱산에 해 뜨는 풍광. /최철호 소장 제공 양천은 작지 않은 도시다. 양천향교와 양천 궁산성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겸재 정선은 65세에 양천현령으로 5년 간 명작을 남겼다.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그림 속으로 간다. 양화진·선유봉·소악루·개화사·소요정·귀래정·낙건정·이수정을 담았다. 그림 속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 아직도 있다. 그는 양천팔경첩을 김창흡 형제에게 선물하였다. 후손인 김충현 서예가가 소장 후 ‘일중문화재단’에 남겼다. 그 작품이 양천의 품으로 와 전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양천팔경첩을 알아야 양천이 보인다. ‘양화진(楊花津)’은 서울의 끝이자, 경기의 시작인 양화나루을 그렸다. 누엣 머리처럼 봉긋한 잠두봉, 만조시 양화진과 행호에 바닷물이 넘실대는 절벽을 표현했다. 병인박해로 수천의 순교자가 나와 천주교에서 ‘절두산 순교성지’로 하였다. ‘절두’라 지금 들어도 무섭다. 겸재 정선은 양화진을 어디서 그렸을까. 양천향교 위 양천 궁산성 ‘소악루’에 잠시 머문다. 한강물길 따라 목멱산에 해 뜨는 찰나 사진 한 컷이 그림이 되었다.

한강물길 따라 행호·양화진·밤섬·노들섬·동작진·압구정·송파진·광진·미호 그리고 두물머리까지 그림 같다. 겸재 정선의 붓에 도성 밖 한강 따라 아름다운 풍경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 되었다. 양천현령 때 그린 한강변과 다시 그린 그림을 모았다. 행호관어·양화환도·금성평사·공암층탑·안현석봉·목멱조돈·압구정·송파진·광진·미호·녹운탄·독백탄, 양천 궁산 소악루에 뜨는 달 ‘소악후월’등 모든 그림이 명작이다.

양천 궁산성지에서 본 양화진 너머 목멱산 위 타오르는 태양과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 /최철호 소장 제공 겸재 정선은 도성으로 돌아와 장동을 그렸다. 친구의 죽음을 보며,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었다. 무더위 속 사흘 내내 비가 내린다. 슬프다! 비 그치는 찰나 그는 인왕산 하늘과 구름 그리고 친구 집을 슬픔 속에 담았다. 인생작이 탄생하는 순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에 낙관을 찍는다. 겸재 정선은 76세부터 숨이 멈춘 84세까지 그린 그림이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이다. 수성동·자하동·필운대와 청휘각·백운동·창의문이 마지막 삶에 그려진 것이다. ‘청풍계’ 그림 속 백세청풍 바위 옆에 서 있다.

“술은 잠깐이요, 그림은 백년 후 영원하리니 나는 이 밤을 붓으로 취할 것이오.” 술 보다 붓을 더 사랑한 겸재 정선이 그립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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