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지음(知音), 소리의 풍경

  • 입력 2026-08-27 19:25:34
국악인 허영·음악애호가 심상용과
맛집 콩국수 먹고 심 선생 댁에
입체음향 듣는 국악 특별한 경험
친구와 다시 찾아 가 또 귀 호강

김예옥 출판인 폭염이 극성을 부리던 8월 초, 콩국수를 먹자며 연락을 해온 이는 국악인 허영 선생이었고 처음 콩국수를 제안한 이는 음악 애호가 심상용 선생이었다. 땡볕에 긴 줄이 서 있는 서울 순화동의 유명한 집에서 특별한 콩국수를 먹은 다음 그냥 집으로 돌아가나 했더니 이번엔 심 선생의 집에서 음악을 감상해야 한단다. 사실 봄부터 심 선생 댁에 가자는 이야기가 여러번 나왔으나 여차여차 시간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이태원에 살다 무악재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심 선생은 방 한 칸을 음악 전용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음악실을 꾸밀 때, 돈 걱정을 할 만하면 고향 땅이 팔려 돈이 올라오고 또 올라오고 했다면서 지금까지도 기분이 좋은지 파안대소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던 심 선생은 클래식·팝·재즈를 중심으로 들어왔는데, 10여 년 전 허 선생을 만나 국악에 눈뜨게 됐단다. ‘이게 뭐지?’ 할 정도로 국악에 무지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악만 듣고 있는 데다 진보를 거듭해 국악 음반을 만드는 전문가로 태어났다. 허 선생의 음반도 심 선생이 만들어 세상에 내놨고, 허 선생의 스승인 인간문화재 이동규 선생(가곡 예능보유자)의 음반도 심 선생이 만들었다. 허 선생의 음반을 만들 때 수십번의 편집과정을 거쳤다면서 만져도 만져도 자꾸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 선생은 이동규 선생이 30년 전에 유명 레코드사에서 만든 음반과 자신이 만든 허 선생의 최신 음반을 잇달아 틀어주면서 비교해보라고 했다. 이동규 선생의 음반은 한창 시절의 명창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아쉬운 점은 소리가 돋보이지 못하고 잡목에 우거진 수풀처럼 가려져 있는 점이었다. 반면 허 선생의 음반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소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여자 소리꾼의 소리를 돋보이도록 뒷받침하고 있었다. 허 선생은 심 선생의 노력에 “이런 분을 어디서 만나겠어요? 내가 천운이죠”라고 했다. 심 선생은 심 선생대로 허 선생을 만나 자신이 국악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을 감격스러워 했다. 두 사람 모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풍악에 빠져있는 모습이 몹시 부러웠다.

허 선생은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인물로 은행원, 도예가, 사진가, 농사꾼 등을 거쳐 50대 후반에 국악(정악 중 가곡)을 시작했다. 그의 소리를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좀 더 일찍 시작했다면 무형문화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허 선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악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그가 사용하던 국악 테이프는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축 늘어져 있고 그 안에 들어있던 해설집은 나달나달해져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국악인 옆에서 그의 음반을 입체음향으로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허 선생은 쑥스러운지 별말이 없었다. 그때 옆에서 심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직장생활을 할 때 1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타면 카오디오가 1천200만원이었단다. 퇴근하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최대한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듣다가 올라오면 부인은 쿵쾅거리는 소리에 벌써 남편이 도착했음을 알고 있었다. 또 한참 동안 KBS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 나오는 곡들을 녹음하기 위해 칼퇴근해서 대기하곤 했다며 그때 녹음한 수많은 곡들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귀가 호강하는 경험을 하고는 얼마 뒤 친구와 다시 그곳을 찾았다. 심 선생은 나름대로 여러 곡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첫 번째 곡은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였다. 심 선생은 그 안에 나오는 ‘오제의 죽음’을 좋아해서 가족들한테 자신의 장송곡으로 써달라고 이미 부탁해놨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허 선생이 나한테 “김 선생이 죽으면 장송곡은 내가 선곡해 줄게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뜨악하게 쳐다보았다. 나보다 한참 위의 어른이 그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이내 꼬리를 내렸다. “선생님이 노래하실 때 보니 끝 모를 정도로 호흡이 기시네요. 아마 저보다 수십 년은 더 사실 것 같아요. 좋아요! 저 죽으면 좋은 곡으로 틀어주세요.” 나는 뭔가를 보장해놓은 듯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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