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 0원, 재산 0원.’ 서류상 무일푼인 65세 이상 노인이 117만 명을 넘어섰다. 기초연금 수급자 675만 8천 명 중 17.42%,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반대편엔 월 소득인정액 200만원을 웃도는 수급자가 96만 명, 300만원을 넘기는 노인도 15만 명이나 된다. 같은 그래프 안에서 극빈과 여유가 나란히 공존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기초연금 수급자 소득인정액 분포’가 그린 그림이다. OECD 38개국 중 노인빈곤율 1위 한국, 익숙한 오명이 숫자로 재확인됐다.
‘소득인정액 0원’ 노인은 시골이 아닌 대도시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경기 25만5천명, 서울 18만3천명, 부산 9만5천340명. 수급자 대비 비율로는 인천이 7만5천412명 19.85%로 가장 높다. 논밭 딸린 시골 노인보다, 월세방에 몸을 누인 대도시 노인이 더 참담한 빈곤에 몰려 있음을 뜻한다.
문제는 빈곤을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복지 제도의 단단한 장벽이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수급권자와 그 배우자는 소득과 재산이 없어도 기초연금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다. 짧게 근무하고 쥐꼬리 연금을 받거나, 이혼·별거로 연금줄마저 끊긴 이들도 예외는 없다. ‘한때 연금을 받았다’는 이력 하나가 평생 기초연금 문턱을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
더 얄궂은 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 액수만큼 생계급여가 깎인다. 국가가 한 손으로 준 돈을 다른 손으로 도로 거둬가는 구조다. 정작 가장 절박한 노인들이 신청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생계급여만 받고 기초연금은 아예 신청하지 않은 노인이 수만 명에 달하는 이유다. 국가 재정은 아꼈다 쳐도, 어르신의 주머니는 비어 있다.
기초연금의 모순을 고칠 기회가 예고돼 있었다. 정부의 ‘하후상박’ 개편안이다. 그런데 사전 브리핑은 시작 한 시간 전 취소됐고, 정식 발표도 기약 없이 밀렸다. 알려진 내용을 보면 이유가 짐작된다. 수급 기준을 소득 하위 70%에서 단계적으로 기준중위소득 80%까지 좁히는 사이, 정작 최극빈층에게 돌아갈 인상액은 민망한 수준이다. ‘줬다 뺏는’ 구조의 손질은 이번에도 빠졌다. 문턱을 높여 대상을 솎아내는 일보다 급한 건, 이미 그 안에 있는 117만 개의 텅 빈 주머니를 채우는 일이다. 가난을 증명하라는 복지는 이미 한발 늦은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