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줄사택'은 인천시 부평구 부영로에 접한 다세대·다가구주택 밀집지역 안에 있다. 부평역사박물관과 관련 문헌 등에 따르면 일본제국주의는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던 1940년 초반,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제조를 목적으로 지금의 부평동 일대에 일본육군조병창 확장공사를 시작한다. 일대의 민가들을 강제로 부수고 조병창의 하청업체인 히로니카상공과 미쓰비시중공업의 군수공장을 세웠다. 이들 공장의 가동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잠자리가 필요했는데 이때 들어선 공동주택이 바로 미쓰비시 줄사택이다. '줄사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정한 크기의 건물들이 지붕과 처마를 맞대고 줄지어 붙어있기 때문이다. 공장노동자들은 일제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강제동원된 우리 청년들과 일제의 징병·징용을 피해 군수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 사람들이었다.
이 미쓰비시 줄사택이 보존이냐 개발이냐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보존과 개발을 주장하는 양측의 논리는 저마다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보존을 주장하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일제의 강제징용 노동현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강제노동자들의 합숙소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우리 대법원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측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미쓰비시가 이를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줄사택은 강제 노동의 증거이자 생활 흔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한다. 반면 해당 지역주민들은 살면서 직접 겪고 있는 고충을 토로하면서 사실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낙후된 채 방치된 지역인 만큼 이제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1천여채에 달했던 줄사택은 점차 줄어들어 현재 60여채만 남아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부평구는 지금까지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마을박물관 설립은 주민 반발로 무산됐고, 공영주차장 개발은 구의회의 제지로 보류됐다. 뒤늦게 '미쓰비시 사택의 가치와 미래, 그리고 부평'이라는 주제의 학술토론회를 이달 중 개최한다고 밝혔다. 보존과 개발을 주장하는 양측의 얘기가 가감 없이 개진되고 편향됨 없이 논의돼야 한다. 현안을 정리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인천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안 자체가 부평구에만 맡겨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존이든, 개발이든, 절충안이든 그 결과에 대해 부평구와 인천시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