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된 ‘편의점 약’ 구매 제한… 마트형 약국 시대에 유명무실

  • 입력 2026-08-29 09:18:20
약사법상 ‘1개 포장 단위’만 판매 가능
최근 늘어난 매장형 약국은 제한 없어
소비자 “편의점만 제한 납득 어려워”
정부 ‘상비약’ 확대 검토… 약사단체 반발

28일 수원시 내 한 마트형 약국에 타이레놀정 제품이 여러 상자 진열돼 있다. 이날 해당 약국에서 진열된 제품을 별도 수량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마트형 약국에는 편의점과 같은 일률적인 구매 수량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2026.8.2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타이레놀은 개수 제한 따로 없어요. 진열된 만큼 구매하셔도 됩니다.”

28일 수원시의 한 마트형 약국에서 타이레놀정 500㎎을 몇 개까지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약사가 내놓은 답이다. 매대에는 소비자가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제품이 여러 상자 쌓여 있었고 수량 제한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제품을 편의점에서 사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행 약사법 시행규칙은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가 한 번에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을 제품별 ‘1개의 포장단위’로 제한한다. 지난 2012년 약국 밖 의약품 판매를 허용하면서 마련된 안전관리 규정이다. 편의점에는 약사가 상주하지 않는 만큼 판매 품목과 수량을 제한해 안전성을 보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최근 도심 곳곳에 생겨나는 대형 매장형 약국에서는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일반의약품을 직접 골라 별다른 수량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데다, 일반 약국에서도 매번 복약지도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소비자 경험이 이어지면서 현행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화성시에 거주하는 A씨(20대)는 “동네 약국에서도 별도 설명 없이 약을 살 때가 대부분”이라며 “약을 오남용할 우려가 있다거나 자세한 설명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편의점에만 수량 제한을 두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복수의 구매를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한 편의점에서 같은 제품을 1개만 사도록 해도 다른 점포에서 추가로 구매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27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대에서 시민이 약을 고르고 있다. 정부가 편의점 판매 ‘안전상비의약품’을 품목수를 20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약사 단체들이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반대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최근 보건복지부는 안전상비약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13개 품목이 지정돼 있으며, 복지부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오는 12월까지 이를 최대 20개로 늘리고 약국과 24시간 판매점이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확대 방침을 두고 약사단체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입장문을 내고 “고령화로 만성질환자와 다제약물 복용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반의약품도 약사의 전문적인 상담과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의약품 접근성과 안전관리를 둘러싼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품목 확대와 더불어 현행 수량 제한의 실효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편의점이 약국이 될 수는 없는 만큼 어떤 의약품까지 상비약으로 둘지는 충분한 조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다만 오남용 문제를 단순히 몇 개를 사느냐로 막을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구매 수량을 직접 제한하는 규제는 현실에 맞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