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수용 보상문제로 도시개발지구 내에 가건물을 짓고 살며 고양시와 9년간 대립해 온 임차인이 공무원들의 진심이 담긴 설득 끝에 입장을 선회, 소통행정의 대표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행정대집행과 형사처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렬하게 저항하던 이 임차인은 시의 도움을 받아 재기의 발판까지 마련했다.
19일 고양시와 덕이구역도시개발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일산서구 덕이동에 창고건물을 임차해 가구매장을 운영하던 A(여·55)씨는 2006년 초 발생한 화재로 가게가 소실됐다. 생업이 끊길 위기에 놓인 A씨는 자신의 돈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기로 하고 토지소유주 B씨와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B씨는 계약과정에서 '도시개발을 위한 토지수용 시 임차인은 적극 응해야 하며, 이전비와 영업권 등을 일체 요구할 수 없다'는 특약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에 도시개발이 예정됐기 때문이었다.
덕이지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건물 축조비용을 돌려받지 못한 채 생계마저 포기하게 된 A씨는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B씨가 명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A씨는 인근 보행로에 가건물을 만들어 거주하며 주거문제 해결, 피해배상, 임대매장 제공 등을 요구하는 투쟁에 돌입했다.
세 자녀를 양육할 길이 막막해진 A씨는 철거민 단체와 연대해 도시개발을 추진한 시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행정대집행만 세 차례, 폭행시비와 시청진입 농성 등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A씨의 보행로 점유로 인해 일대는 통학로와 1개 차선이 막히고 운전자 시야를 가리는 등 불편을 겪었다.
최근 이 같은 보고를 받고 현장을 살핀 김진흥 제1부시장은 무작정 법의 잣대로 들이댈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B씨도, 공무원도 믿지 못하겠다"는 자녀들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이때부터 공무원들의 부단한 설득이 시작됐다. 김용섭 도시정비과장과 임민택 주무관은 거의 매일 30분씩 A씨와 통화하며 하소연에 귀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높으신 분의 약속과 따뜻한 한마디를 원한다"고 알려왔다. A씨 가족은 지난 4일 김 부시장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상처받은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A씨 가족은 시에서 연계한 LH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가건물은 지난 15일 아무런 반발 없이 철거됐다. 이와 별도로 시는 A씨에게 길벗가게 운영을 안내하는 한편, 자녀의 취업을 알선했다.
고양/김재영·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