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추진 '경비실 에어컨' 가로막은 대표단

  • 이준석·손성배 기자
  • 발행일 2018-08-02
'시뻘건 온도계' 앉아 있기도 힘드네…
1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한 아파트의 경비실 온도계가 37도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경비원이 고장 난 선풍기 뒤로 땀을 닦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수원 장안구 A아파트 30명 '동의서'
대표회의 일부 반대… '자비'도 거절
회장 "무인화 염두 바로 떼야할수도"

연일 기록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수원시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내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놓고 입주민들과 입주자 대표단이 갈등을 빚고 있다.

다른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입주민들이 반대를 하는 반면, 이 곳은 입주민들이 직접 나서 에어컨 설치를 주장하고 입주자 대표단 중 일부가 반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일 수원시 장안구 소재 A아파트 주민 등에 따르면 A아파트는 58개 동 5천282세대가 살고 있는 수원 최대 규모의 단지로, 경비원 6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곳곳에 설치된 경비실 29곳에서 에어컨 없이 직접 가져온 선풍기로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버텨내고 있다.

이에 아파트 주민 30명은 지난해 6월 "지구 온난화로 더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경비실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자"며 동의서를 작성, 관리사무소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 안건은 일부 입주자 대표단의 반대에 가로막혀 입주자대표회의에 상정조차 못했고, 관리사무소 측은 예산을 세워 내년에 에어컨 설치를 추진하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관리사무소는 약속대로 에어컨 설치에 필요한 1천500만~2천900만원의 예산을 세워 입주자대표회의 예산소위원회에 올렸지만, 올해 예산 항목에서 제외됐다.

입주자 대표단의 반대로 에어컨 설치가 막히자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자비를 모아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런데 전기료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절됐다.

에어컨 설치를 추진한 주민 B씨는 "세대당 몇천 원의 관리비만 더 내면 주민들을 위해 고생하는 경비원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근무할 수 있다"며 "그런데 입주자 대표단의 일부가 관리비 인상을 문제로 경비원들을 살인적인 무더위로 내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은 "에어컨 설치에 앞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이라며 "매년 경비 용역 계약에만 십수억 원이 들어 최근 지어진 아파트처럼 경비시스템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에어컨을 설치한 뒤에 바로 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손성배기자 lj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