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엠 창간특집]경기도 아파트 변천사② 서울 집값 잡기위해 외곽으로... 상전벽해 1기 신도시

1988년 서울올림픽후 '3저 영향' 집값 천정부지
공급 부족... 강남 아파트값 반년사이 50% 올라
노태우정부 1992년까지 200만호 주택건설 발표
서울중심 20km내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5곳 1기 신도시 선정... 자족성 고려 28만호 공급
佛 아파트 공화국 저자 "한국경제 기적의 한 과정"
  • 윤혜경 기자
  • 입력 2020-07-31 10: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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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한 한강변 아파트 단지 전경. /KTV 제공

저금리로 유동자금 부동산 시장에 쏠려
강남·과천 등 아파트값 30~50% 폭등

노태우 정부, 200만호 주택건설 계획 발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1기 신도시 개발


대한주택공사(현 LH)가 1978년 10월부터 1985년 12월까지 과천시 주택단지(1만3천522가구), 광명 철산지구주택단지(6천280가구), 수원시 주택단지(3천10가구) 등 도내에 4만6천831호의 아파트를 공급한 후인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서민아파트인 국민 아파트뿐 아니라 민간 건설사가 건설한 아파트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배경은 1988년 발표된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 계획'이다.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서울 올림픽' 이후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로 시중의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쏠린 데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가 주택공급 대책을 세운 것이다.

당시 서울을 비롯해 경기지역의 집값은 천 만원 이상씩 오르는 상황이었다.

대한주택공사의 1988년 하반기~1989년 상반기 주택가격 변동상황을 보면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값은 6개월간 30~50% 상승했다. 1988년 8월 3억4천만원이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61평 매물은 이듬해 1월 3억8천만원에 거래되다 4월 들어 4억5천만원으로 손바뀜했다. 집값이 8개월 만에 1억1천만원(32.4%)이 뛴 것이다. 

소형 아파트에 속했던 과천시 주공아파트 16평 매물도 1988년 8월 3천500만원에 매매되다 1989년 1월 3천300만원, 1989년 4월 5천만원에 거래됐다. 3개월 만에 1천7백만원(51.5%) 오른 것이다.

이는 연평균 10% 이상 인상되던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가파른 상승세다. 한국에 최저임금이 처음 도입된 1988년 당시 1그룹(섬유·식료품 등 저임금업종)의 최저임금 시급은 462.5원에서 이듬해 600원으로 29.7%나 올랐지만 아파트값 상승률에는 미치지 못했다. 1989년 1군 최저임금으로 과천시 주공아파트 16평에 입주하려면 8만3천333시간을 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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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26일 분당신도시 건설현장 사진. /KTV 제공

이처럼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택값을 잡기 위해 노태우 정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개년간 총 200만호의 주택 건설을 목표로 한 200만호 주택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안에는 서울 남북측 근교에 각각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이 주택건설 가용택지를 더 확보할 수 없었던 상황인 만큼 인근에 신도시를 조성해 주택을 세우고 인구를 분산하겠다는 뜻이었다.

신도시 개발지는 전국의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실태를 토대로 10만호 이상의 주택건설이 가능한 300만평 이상의 넓은 지역이어야 했다. 더불어 서울의 주택수요와 도시기능을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사업시행 시 기존도시기반 시설과 연계가 가능하고,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개발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부천 중동, 군포 산본 등의 사업지가 선정됐다.

강남 주택 수요 대체지 분당
상업·업무 갖춘 자족형 도시


서울 도심에서 반경 20km 내에 위치, 총면적 1천963만9천8㎡ 규모의 성남 분당지구(분당구 분당·야탑·상탑·중탑·하탑·서현·정자·수내·금곡·구미·매송·이매·서당·장안·초림·내정·백궁·불정·신기·미금·오리동 일원)는 강남의 주택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최적지로 꼽혔다.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판교~구리간 고속도로와 연접해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분당지구를 교육, 문화, 상업, 업무 등 도시기능을 고루 갖춘 자족형 도시로 만들겠다고 계획했다. 개발 사업기간은 1989년 8월 30일부터 1996년 12월 31일까지이며, 총 사업비 4조1천642억원이 투입됐다.

분당지구의 전체 주택공급계획량은 9만7천500호다. 중산층 인구의 유입을 목표로 해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65~85㎡)를 초과하는 아파트가 전체 아파트의 34.2%를 차지했다. 가장 먼저 분양된 곳은 총 7천769가구 규모의 시범단지로 공사가 아닌 건설회사가 시공했다. 

단지의 북서 측에 위치한 1단지는 삼성종합건설과 한신공영이 공동으로 1천781가구를, 폭 30m 도로 남측에 있는 2단지는 우성건설이 1천874가구, 중앙공원과 녹도로 연결된 3단지는 (주)한양이 2천419가구, 남동 측 4단지는 현대산업개발이 1천695가구를 건설했다.

당시 입주 현황을 보면 분당시범단지는 부동산 투기 열풍이 최고조에 이른 1989년 12월 분양돼 최고 170대1, 평균 47.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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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신도시와 함께 들어선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있는 호수공원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사진은 1996년 5월 당시 모습. /KTV 제공

고밀도·저밀도 적절히 배치한 일산
천혜의 전원적 환경 갖춘 도시 건설


1천573만5천711㎡ 면적의 일산지구(고양시 일산구 일산·백석·마두·장항·주엽·대화동 일원)는 서울 도심에서 북서방향으로 20km 반경 내에 위치하며, 임진각, 판문점이 입지하는 등 천혜의 전원적 환경을 갖춘 도시로 건설됐다. 사업기간은 1990년 3월 31일부터 1995년 12월 31일까지며, 총 사업비 2조6천601억5천900만원이 투입됐다.

일산지구에는 6만9천호의 주택이 공급됐다. 정발산을 중심으로 한 2개 생활권 중심부에는 고밀도 아파트단지 5만8천호가 공급됐다. 정발산 중앙공원 주변인 22·23·27블록에는 저밀도 주택단지를 배치하고 건축물 높이를 2층, 건폐율(대지면적 중 최대한 건축할 수 있는 비율) 50%,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연면적 비율) 80%로 제한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보면 도시의 주거지역 건폐율은 70% 이하다. 대지면적의 70%까지 건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산지구의 건폐율은 이를 밑도는 50%로, 일반 주거지역에 비해 여유 공간이 있게 건축물이 들어선 셈이다.

용적률은 쉽게 말해 면적 대비 얼마나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를 뜻하는 수치다. 가령 대지면적이 100㎡인 땅에 용적률이 50%라고 하면, 건물 총면적 50㎡까지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저밀도 주택단지에는 대지에 적당한 여유공간을 갖춘 키가 작은 주택들이 건설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단독주택지 외곽에 중밀도 연립주택지를 배치해 도시 스카이라인이 조화되도록 했다.

분양은 1990년 9월 20일에 시작됐다. 라이프주택이 건설한 임대 756가구, 국민주택규모 798가구와 우방주택이 지은 국민주택규모 408가구, 중대형 357가구, 선경건설과 코오롱건설이 짓는 중대형아파트 707가구 등 총 3천26가 대상이다. 이후 분양물량이 쏟아져 대량 청약 미달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첫 입주는 1992년 8월 30일에 진행됐다. 삼호·풍림아파트 768가구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3천58가구가 일산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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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평촌지구 개발 후. /안양시 역사·포토갤러리

안양의 새로운 중심 상업·업무지 평촌
전체 주택용지의 92% 공동주택 조성


안양시에 속하면서 과천시 남측과 인접한 평촌지구(안양시 동안구 평촌·비산·호계·관양동 일원)는 서울 도심에서 남쪽으로 20km 지점에 조성됐다. 총면적은 510만5천904.4㎡이며, 사업기간은 1989년 8월 30일부터 1995년 12월 31일까지며, 1조1천787억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평촌지구는 벌말역을 중심으로 시청, 법원 등 행정·업무타운이 형성되고, 범계역 주변은 쇼핑·금융타운으로 조성하는 등 안양시의 새로운 중심상업·업무지로 조성하는 게 목표였다.

주택 공급계획량은 총 4만2천호로, 당시 주거용지 비중은 계획지구 면적의 37.8%이며, 전체 주택용지의 7.8%를 단독주택용지로 확보하고 나머지 92.2%를 공동주택용지로 계획했다. 아파트로 공급될 가구 수의 42%를 임대아파트가, 국민주택 규모 이하의 소형 분양 아파트가 33%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중산층과 그 이상의 계층을 위한 중대형 아파트로 공급됐다.

1차 공급은 산본지구와 함께 1990년 5월에 진행됐다. 당시 1차 분양물량은 임대주택 5천115가구, 국민주택 424가구, 국민주택규모 1천728가구, 국민주택규모 이상 396가구였다. 이달 우성건설이 평촌지구에 지을 중대형 아파트 188가구에 대해 발행한 주택상환사채청약 모집에는 무려 3천724명이 몰려 36.5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주택상환사채는 정부가 수도권 5개 신도시 및 대단위주택단지에 전용면적 18평 이상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택건설지정업체에 미리 주택가격 일부를 받은 뒤 아파트분양권을 주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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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14일에 촬영된 군포 산본신도시 전경.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KTV 제공

산본 과천·안산·경부선 교차점
LH가 전체 아파트 67%를 공급


평촌지구와 함께 1차 공급을 진행한 산본지구(군포시 산본·금정·당동 및 안양시 안양동 일원)는 총면적 418만9천365㎡ 규모로 조성됐다. 사업비는 6천300억원이 투입됐으며, 사업기간은 1989년 12월 30일부터 1997년 12월이다.

산본지구는 서울 도심에서 남서측으로 25km 권역에 위치한다. 광역적으로는 서울과 안양, 수원을 연결하는 경부교통축상에 있으며, 국도1호선인 경수산업도로와 안양시내를 통과하는 중앙로가 석수동에 연결, 서울 서남부의 구로지역과 접속된다. 사당~안산간 국도 47호선을 통해 서울의 사당동 및 강남지역과의 연결이 쉬웠다. 정부는 산본지구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두고 과천선(사당~금정), 안산선(금정~안산), 경부선(서울~수원)간의 교차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시를 계획했다.

대한주택공사는 1997년 2월 발간한 '산본신도시 개발사'를 통해 "89년 8월 30일부터 시작된 127만평의 택지개발사업이 95년 1월 31일 준공된 데 이어 아파트 입주가 완료되는 시기인 금년 12월이면 산본신도시 건설공사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며 "그간 산본에는 총 4만1천397호의 아파트가 건설됐고, 이 중 67%에 해당하는 2만7천772호의 아파트를 공사가 건설해 무주택 국민에게 공급했다. 민간주택건설회사가 건설한 1만3천625호의 주택은 공사가 개발한 택지 위에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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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2000년대 부천 중동신도시 전경. /부천시 제공

부천시·LH·한국토지개발공사가 만든 중동
4만3천호 중 공동주택 전체 98% 차지


부천시에 건설된 중동지구(중구 춘의·삼정·심곡3동, 남구 상동·중동·송내동 일대)의 전체 면적은 544만8천498.9㎡이며, 지구를 삼분해 부천시,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합동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중동지구는 서울 도심에서 남서쪽 20km에 있다.

부천시는 서울과 인천 양 대도시 사이에 위치해 경인고속도로, 전철 및 46번 국도에 의해 연결되는 경인축선상에서 경공업을 중심으로 발달한 위성도시로, 정부는 기존 주거지와 연계 및 개발유형을 고려한 주택형태로 개발을 계획했다. 중동지구 사업기간은 1990년 2월부터 1996년 1월까지며, 16만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로 만들기 위해 1조8천4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당시 주택 건설 계획은 4만2천500호로 임대가 1만6천490호, 국민주택 규모 1만7천570호, 국민주택규모 초과 7천360가구였다. 공동주택이 전체의 97.5%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 입주는 1992년 12월에 시작됐다. 시영아파트 700가구 입주를 시작으로 이듬해 연말까지 4천180가구가 중동지구로 이사했다.

이렇게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총 5개의 신도시가 조성, 28만여호의 주택건설이 이뤄졌다. 이들 신도시는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규모도 크지만, 자족성을 가질 수 있도록 특화했다는 점이 발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또 (주)한양, 삼성종합건설, 현대산업개발, 한신공영 등 민간 건설사들이 아파트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들의 덩치를 키워나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분당의 야경은 농촌의 벌판 위에 창마다 불을 밝힌 건물들이 줄지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논 한가운데서 빛나는 숲처럼 장관을 이룬다."

지난 1993년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을 보고 놀란 뒤 이를 연구해 책 '아파트 공화국'을 펴낸 프랑스 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가 분당 신도시의 야경을 보고 책에 쓴 소감이다. 광활한 농지를 밀고 아파트가 들어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빛나는 숲처럼 표현했다.

한국 아파트에 대한 그의 견해는 책 곳곳에 녹아있다. 그는 "아파트단지는 도시 형태의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기적'을 낳게 한 과정과, 30년에 걸친 농경토지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의 논리가 급변했다. 1970년 공동주택에 관한 한국인들의 망설임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여러가지 요소들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광을 설명하는 요소가 됐다"며 "주택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주민들 개개인의 생각에도 변화를 초래했다"고 정리했다.

/윤혜경기자 hyegyung@biz-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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