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연안아파트 이주에 '희비 엇갈린' 주민들

  • 입력 2023-02-02 19:51:28

연안아파트
인천시 송도국제도시로의 이주 대책이 확정된 가운데 지난 1일 중구 항운아파트가 외벽 페인트가 벗겨지는 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항운·연안아파트연합이주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항운·연안아파트의 70% 정도는 비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2023.2.1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 중구 항운·연안아파트의 송도국제도시 이주대책이 18년 만에 확정(1월27일자 1면 보도=항운·연안아파트, 18년만에 이주대책… 주민 몽땅 송도로)되면서, 원주민과 세입자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4시30분께 찾은 인천 중구 신흥동3가 항운아파트. 항동7가 연안아파트와 함께 최근 송도국제도시로의 이주 대책(1천191가구)이 확정된 이곳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파트 외벽 페인트는 다 벗겨지고 벽 배관은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파트 일부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단지 내 놀이터엔 어린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대신 찬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항운·연안아파트연합이주조합 관계자는 "현재 항운·연안아파트의 70% 정도는 비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건립된 항운·연안아파트는 건물 노후화로 주거 환경이 열악해진 상태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건 기본이고,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수도관이 동파하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입주민들 설명이다.

1980년대 건립 노후·주거환경 열악
원주민 "이곳 빨리 떠나고파" 안도
세입자 "어디로 갈지 막막해" 호소

이날 현장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항운·연안아파트에 거주한 실소유주(원주민)와 세입자로 나뉘었다. 시린 겨울을 보내던 중 전해진 송도 이주대책 소식에 원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안아파트에서 30여 년째 살고 있다는 권모(70)씨는 "지금 여기서 사는 건 말 못할 정도로 힘들다. 너무 지쳤다"며 "오늘내일이면 송도로 보내준다기에 이사도 못 가고 18년이 흘렀다. 하루빨리 송도로 이주하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항운아파트 주민 문모(74)씨도 "과거에도 지금도 여기서 살기 힘든 건 여전하다"며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저렴한 전·월세 혹은 일터와의 접근성 등의 이유로 항운·연안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화물자동차 운전기사 정모(51)씨는 "집은 부천인데 화물차 차고지가 이 근처라 숙소처럼 여기서 지내고 있다"며 "항운아파트가 송도로 이주하면 세입자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는 목소리를 낼 힘이 없다"고 말했다.

연안아파트에서 7년 정도 살았다는 70대 부부는 "전세가 1천500만~2천500만원 정도로 저렴하다"며 "살기에 안 좋은데도 당장 갈 곳이 없어 여기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송도 이전이 확정돼서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어딜 구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현행법상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이주하는 세입자의 경우 자격에 따라 사업시행자(조합)로부터 주거 이전비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항운·연안아파트는 재개발이 아닌 부지 교환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세입자가 보상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인천시 설명이다.

앞서 인천시와 해양수산부 산하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부지 맞교환'으로 항운·연안아파트 주민의 집단 이주를 추진하기로 했다.

맞교환 대상지는 인천시 소유 서구 원창동 북항 배후 부지(4만8천892㎡)와 인천해수청 소유 송도 9공구 아암물류2단지(5만4천550㎡)다. 인천시가 아암물류2단지 부지를 취득해 항운·연안아파트 부지와 교환하고, 조합이 아암물류2단지에 아파트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인천해수청은 북항 배후 부지를 소유하게 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는 인천시가 항운·연안아파트 재산을 취득할 수 없다"며 "현 상황에서는 인천시가 세입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소유주와 세입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오래된 아파트 떠나는데… 인근엔 대규모 주거시설 건립 '아이러니')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