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역사 훼손 우려
최근 공사재개에 천막농성도
집 앞에 도로가 뚫리면 집값이 오른다. 당연히 동네 사람들이 도로개설을 반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천 동구 금곡동, 창영동 일대를 아우르는 배다리 마을 사람들은 보통의 사회적 통념과 반대로 15년 넘게 인천시를 상대로 집 앞에 도로를 내지 말라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헌책방거리로 유명한 이곳의 사람들은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삶의 가치가 배다리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일명 '배다리 관통 도로'라 불리는 중구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도로개설공사(2.92㎞)는 지난 2001년 시작됐지만 아직도 개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만 1천524억원, 지역개발과 경제를 위해 이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천시의 입장과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가 생기면 지역 공동체 파괴는 물론 인천항 개항 이후의 역사와 문화를 포함한 여러 가치가 녹아 있는 이곳이 송두리째 망가진다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맞서면서 공사 시작 15년이 넘도록 1천500억원짜리 도로공사가 중단돼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인천시가 중단됐던 도로개설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배다리 도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급기야 배다리 주민들은 지난 9월 중순부터 당번까지 정해 밤을 새는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10일 오후 찾은 동구 배다리. 거리 곳곳에 '우리는 배다리 관통 도로 전면폐기를 원합니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이 내걸렸고, 이곳 주민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에도 '도로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쓴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추석 연휴기간에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오전 7시부터 나와 천막을 지켰다고 한다.
배다리 골목을 지키며 4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는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겠다고 나선 유정복 인천시장이 누구보다 배다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진정성 없는 이벤트만으로는 인천의 어떠한 가치도 찾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5년 넘게 행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 결국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장치인 정치의 힘이 발휘됐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인천시장들은 표를 의식한 정치만 했지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아 배다리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다리에서 1977년부터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태순(65) 씨도 "결국 도로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인데, 유정복 시장이 '표'가 안 되는 동구 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며 "이 문제는 단지 도로 개설 여부를 떠나 배다리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시는 이런 배다리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다리 관통 도로 총 4개 구간 중 2개 구간의 공사를 오는 11월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