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 행정에 보금자리 쫓겨난 철거민

  • 정운 기자
  • 발행일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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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원시티 공사관련 가정 3단지로 이주민 주거 옮겨
LH, 임대주택 거주요건 불충족 이유로 '퇴거' 독촉
A씨 뒤늦게 "30년 거주권 확인" 항의에 처분 번복
"은행 빚·이사 비용 누가 책임지나…" 억울함 호소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무시해도 되나요. 나가라면 나가고, 들어오라면 들어오고. 행정착오였다면 다 해결되는 겁니까."

인천 서구 LH가정3단지 아파트를 임대해 살던 A(62)씨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쫓겨난 것은 지난해 5월. LH가 A씨에게 퇴거 독촉을 시작한 것은 4개월 전인 그해 1월24일이었다.

사정도 해보고 못 나가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A씨는 5년간 살던 집을 비워야 했다. A씨는 은행대출 1억5천만원과 지인들에게 3천만원을 빌려 계양구에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다.

A씨가 살던 집에서 쫓겨난 이유는 LH가 정한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A씨는 빚으로 집을 얻은 뒤에도 자신이 쫓겨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왜 쫓겨났는지 여기저기 수소문해 알아보던 중 임차인대표회의 등에서 '철거민 자격으로 임대주택에 들어간 세대에 대해서는 자산, 소득과 상관없이 30년 동안 거주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LH도 뒤늦게야 인정하고 다시 복귀할 수 있다고 알렸다.

LH는 '행정 착오'로 임대 아파트 주민을 부당하게 내쫓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보상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H가 뒤늦게 A씨의 퇴거 명령을 번복했지만, A씨는 이미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은 뒤였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LH가 A씨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임의로 책정한 180만원을 보상비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A씨는 "LH가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2억원 가까운 빚을 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이사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금액, 이사비용, 관련 세금 등만 해도 1천만원이 넘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도 LH가정 3단지에는 루원시티 공사와 관련한 철거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말부터 입주했다. LH는 지난해 초 재계약 과정에서 일부 철거민 세대에 대해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퇴거 명령'을 내렸다.

국민임대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자산과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그 기준을 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LH는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보상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LH 인천본부가 잘못된 퇴거명령을 내린 것은 A씨 외에도 최소한 5세대가 넘을 것"이라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LH 인천가정 3단지 고유봉 임차인 대표회장도 "정확하진 않아도 적어도 철거민 7~8세대에 대해 퇴거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LH 측이 퇴거명령자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가적인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LH 인천본부 관계자는 "당시 철거민 세대와 다른 임대주택 거주 세대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착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A씨를 제외한 다른 이주 세대에 대해서는 보상금 등에 대해 합의했으며, 올해부터 각 세대에 '철거민 자격으로 거주하는 세대는 소득·자산과 상관없이 거주 자격이 있다'는 문구를 포함한 안내문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