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동산 투기꾼입니다"… 6·17 대책에 서민들 '절규'

  • 윤혜경 기자
  • 입력 2020-06-24 1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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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21번째 부동산 대책 발표 다음 날이었던 지난 18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 부동산 정책 발표 후 분양받았던 검단신도시가 기존 비규제지역에서 투기과열지구로 바뀌면서 자금계획에 차질이 생긴 서민이 호소하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 캡처

"평범하게, 부유하지 못하게, 빠듯하게 살고 있는 제가 갑자기 투기과열지구에 아파트 분양권을 가진 부동산 투기꾼이 됐습니다.

정부의 21번째 부동산규제인 '6·17 대책' 발표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는 부동산 투기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해당 청원을 보면 작성자 A씨는 인천시 계양구에 거주하며 서울에 직장을 다니는 가장으로, 지난 2015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준공한 지 20년 된 1천1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매입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 인정되는 자산가치의 비율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치인 70%까지 채워 1억7천만원에 전용 면적 79㎡ 타입을 매수했다. 대출 상황이 부담됐지만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갚아나갈 생각이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대출금이 1억원 남아있는 상황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새로 이사 간 집값이 올랐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문득 새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에는 엄두조차 못 냈지만 분양 공부를 해보니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계약금 10%를 납부한 뒤 중도금 대출을 받고, 아파트 완공까지 급여소득을 모은 뒤 거주 중인 아파트를 처분하면 새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겠다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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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신도시. /비즈엠DB

마침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분양이 시작됐다. 분양가는 4억4천만원. 그는 직장을 다닐 수 있는 범위의 지역 중 가장 저렴한 금액의 분양가라 여겨 청약을 넣었고, 추첨으로 로얄동·로얄층에 당첨됐다.

A씨는 분양 계약까지 마쳤다. 새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겠다는 들뜬 마음을 가지고 중도금 대출 신청도 할 예정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문재인 정부에서 21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이에 비규제지역에 속했던 현재 거주지는 조정대상지역으로, 아파트 분양 계약을 마친 검단신도시는 투기과열지구로 묶이게 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 이하 LTV는 40%다. A씨는 최대 3억800만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검단신도시가 투기과열지구로 선정되면서 최대 대출 금액이 1억7천600만원으로 줄었다.

만일 A씨가 중도금·잔금 대출을 최대한 높게 잡고 자금계획을 세웠다면 현재는 1억3천만원이 넘는 돈을 마련해야만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기존 주택 처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A씨와 가족이 거주 중인 아파트는 5년째 가격 변동이 없다.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양구가 조정대상지역에 속하면서 대출 규제는 물론 자금출처도 소명해야 하는 만큼 매도는 쉽지 않아 보인다.

A씨는 "2년 후에는 집을 못 팔아 2주택자가 될지도 모른다. 불과 2개월 전만해도 너무 기뻤던 아파트 분양 당첨이 지금 내겐 재앙이 됐다"면서 "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강력한 규제로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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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6·17 부동산대책으로 곡소리를 내는 이는 A씨뿐만이 아니다. 실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는 A씨의 사연과 비슷한 청원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번 정부의 대책으로 그간 비규제지역 또는 조정대상지역에 속했던 지역들이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가 되면서 LTV 비율이 바뀌어 자금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혹여 잔금을 치르지 못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또 다른 청원 글을 작성한 B씨는 "투기지역이라면 계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할부가 될 줄 알고 물건을 샀는데, 일시불로 갚으라고 하면 저 같은 서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전세를 끼고 매매를 하는 '갭 투자' 등 투기세력을 규제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들이 정작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책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정부가 대책의 초점을 '수요억제'에만 두다 보니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대출규제만 하고 있다. 보통 대출은 서민들이 한다. 대출을 조이게 되면 정작 가진 사람들만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이어 "이런 수요억제책만으로는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금리로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에 정부가 규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수요와 공급을 모두 조절하는 정책을 통해 형평성을 조절해야만 부동산 시장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혜경기자 hyegyung@biz-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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