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경인고속道, 인천의 미래로!·(1)도시 체질 전환의 계기로]도심단절·환경피해 '굴레 탈출' 시민 소통로 '지도 바꾼다'

  • 이현준 기자
  • 발행일 2017-11-13
경인고속도로1차개통식

국내 첫 고속도로 산업주도
통행급증탓 교통체증 심화
관리권이관 일반도로 시동
문화·녹지공간 탈바꿈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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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첫 고속도로이면서 국가 산업화를 주도한 경인고속도로의 개통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일로 평가됐다. 당시 '빠른 물류 처리'는 그만큼 중요한 과제였다. 경인고속도로는 도시인 서울과 농어촌인 인천 간 소득 격차를 좁히는 연결고리 역할이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인고속도로는 개통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빠른 물류처리', '소득격차 해소' 등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도심 단절과 환경 피해 가중이라는 굴레를 인천에 남기게 됐다.

■ 수도권 산업화 신호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로는 1967년 3월 착공됐다. 1967년은 정부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1차 연도다. 경인고속도로 건설은 수도권 산업화의 신호탄이 됐다. 고속도로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건설 경험은 물론,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를 확보하는 일도 문제였다.

재원 확보 문제도 컸는데, ADB(아시아개발은행) 차관 도입이 확정되면서 정부는 도로 건설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착공 21개월 만인 1968년 12월 서울에서 가좌IC 구간에 대한 고속도로 건설을 마무리했다.

서울과 인천 간 이동 시간이 50분에서 20분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빨라졌다. 가좌에서 인천항 구간 고속도로 공사는 6개월 뒤인 1969년 7월 준공됐다.

경인고속도로 건설엔 연인원 60만 5천여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시멘트 40만 포, 철근 2천650 t, 아스팔트 3만 2천 드럼 등이 도로 건설 자재로 쓰였고, 30억 원 규모의 총사업비가 도로 건설에 투입됐다.

경인고속도로 건설로 빠른 수송이 가능하게 되면서, 주안과 부평 등 국가산업단지 발전과 인천항으로의 수출입 활성화는 물론 우리나라 산업화의 젖줄이 됐다는 평가를 얻게 됐다.

■ 인천의 미래를 담자

경인고속도로는 늘어나는 통행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확장공사가 진행됐지만, 교통체증은 더욱 심화 됐다. 도심 단절과 소음·먼지 등 환경 피해의 주범으로도 지목됐다.

인천시는 인천~ 서인천 구간 10.45㎞에 대한 도로 관리권 이관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이관 결정을 받아내면서 일반도로화 공사를 조만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인천시는 이 구간을 일반도로화해 시민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인천시는 이 구간의 옹벽과 방음벽을 없애고, 도로 중앙부엔 2024년까지 16만 4천㎡ 규모의 대규모 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단절됐던 지역을 시민 소통과 문화의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게 기본 취지다. 낙후됐던 고속도로 주변 지역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사업은 궁극적으로 인천의 지도를 바꾸는 일"이라며 "회색빛 방음벽과 옹벽을 허물고 문화와 녹지공간으로 변화시켜 인천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